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리히 폰 만슈타인 (문단 편집) == [[유대인]] 혈통 논란 == 만슈타인은 원래 [[유대인]] 혹은 유대인 가문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실상 [[유럽]] 내 진짜 뿌리 깊은 명문 가문이 아니면 [[근대]] 이후 유럽 내 귀족은 거의 [[부르주아]]들이 출세해서 얻은 작위이다. 그렇기에 유대인 혈통이 있을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정작 1918년 [[독일 제국]]이 패망할 때까지 '''프로이센 [[장교단]]에 유대인은 복무가 금지되었다.''' 물론 [[사병]]으로는 19세기 중반부터 복무가 가능했지만 보수적인 프로이센 장교단에서 장교 복무가 가능했다는 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참고로 [[아돌프 히틀러]]의 유대인 상관으로 그에게 1급 [[철십자 훈장]] 수훈을 추천했던 후고 구트만 육군 중위는 프로이센이 아닌 [[바이에른 왕국군]]의 육군 장교다.] 프로이센 장교단에서 유대인도 아니고 일반 독일인 부르주아가 용인된 것도 19세기에 [[나폴레옹]]에게 박살이 난 뒤에나 개혁으로 가능했다.[* 그 전에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엄명으로 '천박한' 부르주아들의 장교단 진입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유대인이라는 설이 나오는 것은, 나치의 유대인 판별 기준은 '''인종'''인 데 반해 독일 제국 시절의 유대인 판별 기준은 '''종교'''였기 때문이다. 즉 제국 시절엔 [[기독교]]도가 아니면 장교는 물론, [[교사]]나 [[공무원]] 자격조차도 없었다.[* 애초에 레빈스키 가문과 만슈타인 가문 모두 프로이센의 명문 귀족 군인 가문이었음으로 대부분이 기독교도임을 알 수 있다.][* 판사는 프로이센이 아닌 독일 지역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나오기 시작했고 대학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유 직업인 [[변호사]]나 [[의사]]가 많았다.] 'Stein'이라는 성이 유대인계 성씨라는 지식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국내에 퍼져 있는데[* 먼나라 이웃나라 독일편에 수록된게 전파되었을 확률이 있다.] 1808년 프로이센이 나폴레옹에 패망하고 개혁을 맡았던 슈타인 남작[* 'Heinrich Friedrich Karl Reichsfreiherr vom und zum Stein' 그냥 보통 슈타인 남작으로 불린다. 프로이센 개혁의 업적도 있지만 [[반유대주의]] 발언으로도 유명하다.]이나 [[슈츠슈타펠]] [[중장]] [[펠릭스 슈타이너]][* 영화 [[다운폴]]에서 히틀러의 공격 명령을 무시해서 뚜껑을 열리게 만든 바로 그 사람이다. 실상은 그냥 이유없이 명령을 씹은게 아니라 슈타이너에게는 공세를 펼치기는 커녕 전선을 사수할 병력조차 모자랐지만.]가 유대인이 아닌 것처럼 그냥 흔한 이름일 뿐이다. 유대인들이 Stein이란 이름을 많이 썼다 해도 독일 내 유대인 비율은 19세기에 1%를 조금 넘고, 20세기 이후엔 아예 독일 사회에 동화되어 바이마르 시대에도 후기에는 0.7%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Stein이란 성을 가지면 유대인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한 생각이다.'''[* 준왕족 취급을 받는 이전 통치 가문 [[슈탄데스헤어]]에서 찾아보더라도 수십 개의 'Stein'이 나온다.] 또한 19세기 이후 부르주아들이 족보 세탁[*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상인들이 돈으로 나라에 공헌하면 작위를 퍼 주는 식으로. 그전에도 마찬가지다.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당시 [[앙시앵 레짐]]은 약간 과장이고 그 당시 귀족들도 대부분 부르주아들이 출세해서 귀족이 된 것이지, 봉건 귀족은 매우 소수였다. 멀리 갈 것 없이 [[조선시대]]의 [[공명첩]]을 떠올려 보자.]으로 귀족으로 신분 상승하는 [[테크트리]]가 일반화되면서 과거 유대인 출신 부르주아들이 귀족으로 자연스레 섞이게 되는데 앞서 서술했다시피 [[유대교]]를 믿으면 정관계로 진입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기 때문에 많은 유대인 출신 귀족들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이들은 종교가 요건인 유대인 기준으론 유대인도 아니다.[* 이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나 19세기 독일 각 지방 정부마다 유대인 판정 기준이 같다. 현대에도 유대인이라는 드립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은 유대교도 믿지 않고 계율도 지키지 않거나 혼혈이 되어도 그냥 유대인 취급하면서 넣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카를 마르크스]], [[멘델스존]] 같은 경우 조상 대에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유대인 드립 공격을 받았다. 정작 자신들은 유대인이라는 자각도 없었다. [[재미교포]] 3세와 비슷한 포지션.] 하지만 일반인의 [[편견]]이란 것이 있기 때문에 19세기부터 새로운 인종에 따른 [[반유대주의]]가 성행하고 기존에 사용되던 종교 기준 유대인 판별은 '''인종''' 과 혈통으로 변질되었고 마치 [[일본]]의 [[부락지명총람사건]]처럼 19세기나 20세기 초반 유명인들을 상대로 그 사람이 유대인 출신이었나 하고 캐고 다니는 서적[* 현재 [[일본]]에서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이 좀만 떠도 [[2ch]]에 상주하는 [[넷우익]], [[혐한초딩]]들이 [[재일]] 판정에 집착하는 것과 비슷하다.]들이 불티나게 판매되었다. 물론 일부 맞는 것도 있지만 부정확한 것이 더 많았다. 애초에 __~는 유대인계 성이다라는 드립이 19세기,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유대인 음모론의 주된 떡밥__이었다는 것[* 'oooo는 유대인계 성이다' 라는 식의 소위 '유태인 판별법'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중 하나로, 일본의 작가이자 러시아어 통·번역가, 동유럽 전문가였던 [[요네하라 마리]]가 소개한 '동유럽 지역에서의 유태인 판별법'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방식민운동]]에 의해 독일인과 슬라브인이 섞여 살게 된 동유럽 지역에서 유태인들이 사용하던 '''[[성씨]]'''를 가려내는 방법으로 요네하라 마리 역시 친한 선배였던 동유럽 문학 연구자에게 전해들은 팁이라고 하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해당 지역의 유태인들이 쓰는 성은 독일계 성이다'''(=슬라브계 성을 쓰는 이는 유대인이 아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보면 중세~근세 무렵까지만 해도 독일 문화권은 오히려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이 상대적으로 덜한 지역이었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하여 동화되었던 사실에서 기인한 것으로, 말하자면 독일인들의 이주와 함께 동유럽으로 이주한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독일 사회와 상당히 동화된 상태였기에 독일계 성을 사용한 것이다. 마침 만슈타인 역시 프로이센 귀족 가문 출신이니 이 기준이 적용되는 범위 출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보면 '유태인들이 쓰는 성씨' 운운이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인지 상식적으로 쉽게 알 수 있다. 폴란드에서 루마니아에 이르는 중·동부 유럽 벨트에서 '유대인계 성씨'를 찾아내겠다는 것은 그 지역의 독일인 대부분을 붙잡고 "너 유대인이냐?" 고 물어보겠다는 소리랑 똑같다는 뜻이다[* '폴란드에서 루마니아에 이른다' 는 지역 개념은 2차대전 이후 현대 국경을 기준으로 했지만, 2차대전 패전 이후 해당 지역에서는 독일계가 대거 추방당했으므로 '그 지역의 독일인들을 붙잡고 너 유대인이냐고 물어보는 꼴'이란 2차대전 이전 시기를 기준으로 한 이야기이다.]. (게다가 만슈타인의 본래 출신 가문은 '레빈'''스키'''' 이니 이는 독일계 성씨조차 아니다.) 결론은 '유대계 성씨' 운운하는 떡밥 자체가 중세·근세 이후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는 동유럽의 역사 (그중에서도 유대인의 정착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이들이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반유대주의 음모론에 의해 만들어진 혐오떡밥을 그대로 물어버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결론은, 유대계 프로이센 장교 집안이란 것은 존재할 수가 없고 유대계라도 기독교로 개종하면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며[* 물론 나치 인종적 판별 기준으론 혈통의 1/4 이상이면 유대인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자각조차 없었지만 당연히 [[홀로코스트]] 때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피가 섞였다고 가정해도 '''과거 까마득한 조상의 영향으로 1/4 혹은 그 이하가 섞여도 유대인이네'''라는 편견으로 유대계라는 설이 나온 것이지, 만슈타인이나 원래 집안인 레빈스키 가문이 유대인인 것은 아니다. 한편 재미있는 이야기로는 레빈스키 가문의 자체는 일찌감치 개종한 [[신교]]도 가문이지만, 개종하지 않은 그 친척들은 상당수가 독실한 [[유대교]]도였다는 점.[* 만슈타인 가문에서도 다르지 않다. 삼촌인 에른스트 폰 만슈타인이 유대교도였다.] 본인도 사석에서 증조부가 [[랍비]]였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슈타인 스스로가 자신의 참모장교들과 대화하면서 별로 멀지 않은 친척 중에 랍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을 정도다. [[독일어]] [[위키피디아]]에서는 [[http://de.wikipedia.org/wiki/Manstein_(Adelsgeschlecht)|만슈타인 가문의 유래]]에 대해 1308년과 1311년에 'Mansto, nobilis de Samethia'(Žemaičiai([[리투아니아]]의 부족 이름)의 귀족 만스토)로서 처음 언급된다고 한다. 또한 원래 핏줄인 레빈'''[[스키]]'''라는 성도 척 보면 알 수 있듯이 '''[[폴란드]]계'''이다. 정확하게는 동포메른과 [[서프로이센]] 일대에 거주하는 서슬라브계 민족인 [[카슈브인]] 혈통인데 독일 제국의 전신이었던 [[프로이센 왕국]]은 [[튜튼 기사단]]이 카슈브인이나 프루시인 같은 비게르만계 부족들을 정복 후 동화시켜 건설한 나라이기 때문에 히틀러의 "게르만 [[순혈주의]]"운운은 그 자체가 모순적인 것이다. 이렇듯 만슈타인 가문에는 폴란드의 영향이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애초에 왕가나 귀족들은 외국과의 결혼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전통 귀족들은 순수 독일인 드립에 대해서 별로 공감하지 않았다. [[1935년]] 최초로 [[뉘른베르크 인종법]]에 근거한 [[독일 국방군]] 내 유대인 및 혼혈인[* 구제국 기준으로 유대인이 아니지만 나치의 기준으로 유대인.]의 강제 퇴역 조치가 시작되자 그 대상자들은 이에 항의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군부 내 유대인 퇴출에 앞장섰던 장성들 다수가 엉뚱하게도 만슈타인의 후원자[* 독일 국방군의 장교 진급에는 후견인의 중요성이 높았다고 한다.]이기도 했기 때문에, 만슈타인은 이 문제를 참모본부 내에서 제기하고서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것은 유대인이라기보다 다른 기독교인 귀족 장교들도 나치의 어처구니 없는 인종 정책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로이센 장교단 주류인 [[융커]]들은 [[엘베 강]] 동쪽 토지 귀족으로, 전통적으로 지주 노릇을 하면서 폴란드와 [[발트 해]]에서 토지를 가진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혼혈도 많았다. [[러시아]]만 보더라도 독일계 귀족들이 대대로 왕실과 혼인하거나 친인척이 될 정도. 상술한 떡밥대로 만슈타인이 유대인의 혈통이 섞였다고 치더라도 독일 국방군 내에서는 1/2 또는 1/4의 유대인이라도 스스로 유대인임을 부정하고 후견인이 적극적으로 행동해 줄 경우 독일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실제로 독일군에는 1/4, 심지어 1/2 유대인 장성조차도 1945년까지 소수 남아 있었다.[* 물론 아주 많지는 않았고, 그나마 장성급은 몰라도 [[영관급 장교]]는 1/4 유대인은 물론이고 그 이하로 피가 섞인 인원들도 대부분 1943년 이전에 강제 제대당했고, 당연히 상당수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가 되었다. 유대인만이 아니라 홀로코스트의 다른 희생자인 [[집시]] 혼혈인 역시 마찬가지 운명을 맞았다.] [[루프트바페]] [[원수(계급)|원수]] [[에르하르트 밀히]]는 아버지가 확실한 유대인임이 사회에 알려져 있었기에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지만(후술하겠지만 실제로 밀히는 '''유대인이 아니다'''), 유능한 군인을 잃고 싶지 않았던 [[헤르만 괴링]]은 '''"누가 유대인인지는 내가 결정한다"'''[* 드립의 원조는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 수도 [[빈(오스트리아)|빈]](Wien) 시장이었던 카를 뤼거다. 부유한 빈의 유대인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뜻이다.]고 하여 밀히를 보호했고, 밀히의 어머니(아리아계)에게 "사실 밀히는 내가 다른 독일인과 [[불륜|바람]] 피워 낳은 애고 지금의 유대인 아버지는 양아버지임."이란 사실을 받아내 밀히는 유대인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대신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사생아]]'라는 꼬리표가 평생 따라붙게 되었지만.[* 그런데 어머니가 그냥 바람 피운게 아니라 '''[[근친상간|어머니의 외삼촌과 바람을 피운 것]]'''이다. 족보상으로 어머니가 사촌 누나가 되는 꼴(...). 자세한 내용은 [[에르하르트 밀히]] 항목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